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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 @g01d_hunt3r

Dear;beloved

공백 포함 11,187자

 20xx년의 서울 하늘은 유달리 우중충했고, 평소에도 매연으로 가득한 하늘이었지만, 이 하늘색은 매연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부족할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박문대가 보고 있는 지금, 이 하늘은 그런 단순한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더없이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한 것이 박문대가 서 있는 주변에서는 다 불타고 흔적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잔해에서 흘러나오는 메케한 연기가, 잔해에서 조금 더 멀어지면 처음 보는 생물이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모습이 눈가에 새겨졌다.

 다른 것들은 다 참아 넘길 수 있어도 참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코끝에서 떠나지 않는 메케한 냄새였다. 외면하고 싶어도, 어제까지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한 그 냄새가, 박문대의 주변에서 남아있었다. 주변에서 놀라서 도망치는 사람들의 비명과 도망치느라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시대가 변하는 바로 그 현장에 박문대는 머물고 있었다.

* * *

 그리고 5년이 지나, 세계는 어느덧 멀쩡한 건물 대신 아직 재건되지 않아서 무너진 상태의 건물이, 평평한 도로가 아니라 부서져서 울퉁불퉁한 도로가 사람을 맞이했다. 복구하려면 쉽게 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직 복구가 진행되지 않았고, 덕분에 걸음을 내딛으려면 그 위치가 안전한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고, 그렇게 안전하더라도 헌터가 아닌 사람에게는 목적지까지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길이 무너지지는 않을지, 주변에 위험한 것은 없을지 확인하느라 5년 전에 비해서 도착 시간이 배로 길어진 참이었다.

 그런데도, 박문대는 자신의 환경이 제법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세계가 멸망할 것 같이 굴던 시기에도, 헌터가 등장하면서 세계의 무너진 질서가 회복되던 그 시기에 박문대는 헌터가 되었다. 헌터가 되었다고 해서 박문대의 삶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처럼 집 밖을 나가고, 위험할 일이 있으면 먼저 손을 뻗고…. 그렇다고 해서 박문대가 이 일에 책임감이나, 의무감 같은 지리멸렬한 것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인구수가 적은 힐러로 각성한 그에겐 남아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선택지가 있더라도 그가 고를 수 있는 폭이 지나치게 좁았다. 박문대의 눈앞에 있는 보기라고는 ‘1. 길드에 들어간다.’ ‘2. 혹은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돕는다.’ 여서, 박문대는 제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법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그나마, 나은 사실이 하나 있다면….

 박문대는 위험한 곳에는 별로 향하지 않았다.

 오늘 집을 나서는 것도 공적인 활동이 아니라, 아니 따지자면 공적인 활동은 맞았다. 길드 합병식으로 향하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이니 공적인 활동이긴 했다. 굳이 따지자면 가지 않아도 되는 자리지만…. 박문대에게 남은 일말의 양심이 그 자리에 참석하도록 만들었다.(굳이 말하자면, 길드 합병식에 참여하지 않아도 무관하나, 이런 공적인 행사를 빠졌다가는 나중에 어떤 식으로 어떤 일이 돌아올지 모르는 법이었다. 박문대는 그럴 만한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길드 합병식은 지루했고, 예상할 수 있는 말들을 예상할 수 있는 언어로 지지부진하게 나열되었다.

 ‘오늘 ○○길드와 □□길드의 길드 합병식에 방문해주신 모든 귀빈분께 진심으로…’

 예상 가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지루한 언어들을 듣고 있으니 박문대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흐릿해진 시야를 다잡기 위해서 다른 생각으로 두뇌를 돌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이번에 합병되는 길드는 약소 길드여서 크게 유명한 사람은 없다.

 두 번째, 하지만 약소 길드라고 해서 주목할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박문대는 그 약소 길드에서 주목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세 번째, 주목하는 사람이 누구냐면…. 이번에 합병된 길드와 레이드를 같이 돌 때마다 만나는 어떤 남자였다.

 탱커인 주제에 방어력도 그렇다고 요령이 좋은 것도 아니여서 박문대가 잠시 눈을 돌리면 쉬이 다쳐서 돌아오고는 했다. 곰같이 구는 것이 누굴 닮은 건지, 도통 알 수 없어서 박문대는 한숨을 내쉬며, 매번 다쳐서 돌아오는 그 남자의 등에 손을 올리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탱커답게 단단한 등 근육이 박문대의 손끝에 잠시 머물렀다. 치료를 목적으로 타인의 등에 손을 올리는 적은 많았지만, 이런 감정이 들게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박문대는 그 낯섦에 제 손을 주체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별 의미 없는 회상을 하며 흐른 시간을 뒤로 하고, 길드 합병식이 종료되어 사람들이 분주히 빠져나가는 홀은 번잡하기 짝이 없었다. 곰같이 미련하게 구는 남자를 생각하느라, 중간부터는 길드장이 무어라 말했는지 기억에 남지도 않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뭐…, 특별히 중요한 내용도 아닐 텐데 고작 합병식에 이렇게 거창하게 하는 것도 웃기지 않던가?

 

 박문대는 여전히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운 한 남자를 애써 구석으로 밀어버렸다.

 이세진, 이세진, 이세진.

 옛날부터 있던 우스갯소리로 운이 좋은 사람의 이름을 세 번 말하면서 이루고 싶은 소망을 말하면 이뤄진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1] 그럼 운이 지독하게 나쁜 사람의 이름을 세 번 말하면 그의 불운을 내가 가져가면서 그의 소망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아, 그의 불운을 가져간다면….

[1] 팬이 이태민을 세 번 외치고 소원이 이뤄졌다는 일화가 알려지면서 '이태민 이태민 이태민' 외치고 소원을 비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출처 : 샤이니_이태민 일화)

 생각할수록 우스워졌다. 이뤄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는 마당에, 이런 가정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던가? 하지만 불운을 가져갈 수 있다면…, 조금 덜 다치도록….

 아, 정말 부질없는 가정이 아닌가?

 이런 가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처럼 느껴져서 지금 드는 모든 기분과 감정과 그리고 이세진에 대한 생각을 곱게 접어 다시금 구석으로 미뤄버렸다. 미뤄버렸는데도 자꾸, 수시로, 수도 없이…. 혹은 눈을 감았다 뜨면, 이세진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이건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아마, 아니라고 생각했다. 박문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확신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스운 일이다.) 실은 중요하더라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야 했다.

 온종일 이세진 생각만 하면서 슬프다가, 갑자기 기뻐지다가… 혹은 짜증이 나거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은 분명, 제 사고회로에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 * *

 이세진이 소속된 길드와 합병을 하고 난 이후로 첫 레이드 일정이 잡혔다. 박문대가 기존에 속해있던 길드에서 참여하는 인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합병된 길드에서 추가된 인원이 있다면…….

 이세진, 자기 몸은 소중히 여길 줄 모르면서 미련하기만 한 놈과 함께 레이드를 가게 되었다. 합병되기 전에도 그와는 종종 레이드를 같이 가고는 했지만,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르게 행동하는 것과 같은 장소에서 서로의 합을 맞춰서 행동하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세진과의 진정한 첫 레이드는 곧 다가올 해당 레이드를 첫 레이드로 삼아도 무방하리라.

 레이드 일정이 잡히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은 회의였다. 레이드에 참여할 인원, 그리고 필요한 소모품, 공략이나 혹은 그 외의 모든 것들을 의논하기 위해서라면 회의는 필수적이었다. 박문대는 평소와 같은 발걸음으로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회의장의 문을 열었다. 평소라면 문이 닫혀있어서 안 열리고 쾅-, 쾅- 하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이세진이었다. 계속 신경이 쓰이고, 눈이 가고, 그리고…. 솔직히 애써 그와의 접점을 피하고자 했는데 회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회의실을 일찍 도착했다고 그와 마주할 것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박문대는 알게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고서는 커피 한 잔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이세진의 자리 위에도 커피 한 잔이 올라가 있었다. 한참을 일찍 도착해서 주변 분위기를 살피는 모습을 보면 곰처럼 미련하기만 한 것은 아닌데, 왜 본인의 몸에 대해서는 이렇게 미련하게 행동하는지 알 수 없었다.

 레이드의 진입하기 위한 회의는 늘 거기서 거기여서 특별히 언급할 만한 내용이 없었지만…. 딱 하나, 박문대의 입장에서 특별한 것이 있다면 이세진이었다. 온갖 위험한 일은 다 자기가 맡겠다고 하면서, 특별히 케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그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그럼 내가 담당할게. 어차피 다들 자주 다닌 사람들이라 익숙할 테고, 나 하나 빠진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저런 말을 한 것은…. 홧김이었다. 이런 말을 할 생각도, 의지도 없었는데, 자신을 소모품처럼 사용해도 된다고 하는 이세진의 모습을 보니까, 참을 수가 없어서 못 참고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박문대는 이세진이 제 몸을 소중히 여겼으면 했다. 이세진은 박문대가 하는 말을 듣고 조금 놀란 듯, 눈이 커지고 자리에서 일어날 것처럼 몸을 움직였지만, 박문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세진이 무어라고 해도 박문대가 이세진을 케어한다고 결정된 것이 달라지지는 않을 테고, 박문대는 이미 결정했으니까.

 그 이후에 이어지는 회의는 지지부진했고, 주의 깊게 들을만한 내용은 특별히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으로. 박문대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칼같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회의실을 나섰다는 점이고, 다행이지 않은 점이라면 뒤에서 이세진이 ‘문대문대? 문대문대?’ 하고 부르면서 쫓아오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박문대는 듣지 못한 척하면서 그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세진이 등 뒤에서 쫓아오다가,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 제 이름을 작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문대는 여전히, 지질구질한 감정을 미련하게 자신을 소모품으로 쓰려고 하는 그의 모습을 본 이후여서, 그에게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날이 선 말들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런 말로 그를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미련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만, 이 생각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조율을 위해 만난 이세진은 평소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를 만나기 싫다고 자리를 피한 박문대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여전히 태연하고…… 느릿하고, 그리고….

 “문대문대~”

 “… 응. 왜, 이세진.”

 속을 알 수 없었다는 의미였다. 박문대는 이세진이 거슬렸다.

 

 거슬린다고 말하면 이 감정이 제대로 전달 될 수는 있을까? 거슬린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좁은 것 같기도 했다. 신경이 쓰이고, 그가 다치면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그리고 그가 위험한 일을 자초하지 않았으면 했다. 이런 모든 감정을 거슬린다고 일축하기에는 너무나도, 단순해지지 않는가….

 거슬린다고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거스러미처럼 남은 감정들이 손끝에서 하늘하늘 떨어지기만 했다. 그의 손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런 감정이 찌꺼기처럼 떨어진다는 것도 불쾌한 일이었다.

 “저번에 불렀을 때, 이 말을 하려고 했었는데…. 나, 힐은….”

 “이세진.”

 “왜, 문대문대~”

 “그거라면 거절한다. 이미 결정된 일이고, 네겐 선택지가 없어.”

 “…….”

 이세진이 입을 열면 열수록, 박문대는 초조한 듯 제 손가락만 만졌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손가락을 만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손끝에 닿는 시선이 깊어졌다. 박문대는 그 시선을 애써 외면하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고개를 피하고, 숙이고, 혹은 다른 곳을 보아도 이세진의 시선은 꾸준하게, 박문대에게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시선이 닿아서 박문대는 결국….

 “더 할 말이 없으면 이만 가볼게, 레이드 당일 날 보자. 이세진.”

 하고 돌아서 버렸다.

 박문대의 뒷모습에 닿는 시선은 여전히 따가웠다.

* * *

 레이드 날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들 오랫동안 합을 맞춘 사람들이고, 크게 위험한 난이도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자기 몸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이세진이었다. 얼핏 보면 안 다칠 법한 위치에서, 요령 있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전혀 아니었다. 타인이 다칠 법한 그 순간을 절묘하게 끼어들어서 자신이 대신 다치는 꼴이, 박문대를 정말 미치게 했다. 이걸… 역시 눈에 거슬린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신경이 쓰인다고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박문대는 이 감정을 아직 정의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레이드가 끝난 다음에는 던전 안에 있는 아이템을 파밍하고, 그리고 다친 사람들을 케어하고…, 그리고 이세진의 앞에 섰다. 상대적으로 멀쩡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너덜너덜해서 곧 죽을 것 같은 몰골이 정말, 짜증 나도록, 눈에 거슬렸다.

 

 “이세진.”

 

 “문대문대~ 그 얼굴은 뭐야~”

 

 “내 얼굴이 어떠길래….”

 

 “글쎄, 거울이라도 한 번 보는 게 어때?”

 

 “지금 볼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잖아….”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야~

 

 그나저나 문대문대! 나 치료해주러 온 거야?”

 이세진이 물어보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그의 등에 손을 올렸다. 손끝에 머무는 감각이 여전히 이상했다. 간질간질하고, 낯간지러운 이 느낌. 아, 박문대는 이세진을…….

* * *

 그리고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서 7월이 끝나가는 시기가 찾아왔다.

 평소라면 무심하게 지나갔을 시기지만, 올해는 조금 아주 조금 특별했다.

 8월 1일, 이세진의 생일이었다. 작년까지의 박문대라면 이세진에게 선물을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박문대는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이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 선물이 무엇이 되든 좋았다. 그가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다치면 쉽게 부서지는 것으로 말이다.

 무너진 상가 건물 사이에서 제대로 영업하는 가게로 찾아가고, 그중에서도 이세진에게 어울릴 만한 물건을 챙기는 것은 제법 어려운 일이었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두어도 쉽게 고를 텐데, 막상 제가 아니라 이세진이 쓸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욕심이 생겼다.

 이건 이세진에게 어울리지 않고, 그리고 이건… 이세진에게 어울리지만 지나치게 튼튼할 것 같았다.

 쉽게 망가지는 물건을 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정말 미친 소리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박문대는 진심이었다. 이세진은 제 몸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선물 받은 물건을 항시 착용하고 있고, 그가 다치면 박문대가 준 선물이 망가져서 고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레이드를 돌 수 있도록, 손목시계라던가 혹은 오르골 같은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르골보다는 손목시계가 좋을 것 같았다. 오르골도 나쁘진 않으나…, 오르골은 들고 다닐 수 없으니까 선물하기엔 역시 애매했다.

 생일 선물이 이세진과 어울리는 것도 중요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박문대가 가장 최우선으로 두는 것은 자신이 준 선물을 챙긴다는 핑계로 이세진이 그의 몸을 챙기는 것이었다. 핑곗거리는 박문대가 준 선물로 충분하지 않은가? 선물로 받은 손목시계를 하고 있으니까, 평소엔 여기까지 할 거 오늘은 여기까지만. 변변찮은 스킬도, 그렇다고 요령도 없는 이세진이 안 다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선택지였다.

 그리고, 박문대가 한 생각치고는 지독하게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평소라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을 텐데, 이세진만 연관되면 박문대의 사고 회로가 망가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묘한 기분을 참을 수가 없어서, 박문대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이내 내쉬었다. 긴 호흡 소리가 꼭 한숨 소리처럼 느껴졌다.

 심호흡을 길게 내쉬고 나서 마저 오르골을 둘러보고, 다시금 손목시계를 둘러보았다. 이세진은 몬스터와 근처에서 다투는 일이 잦으니 손목시계가 조금 더 나을 것 같았다. 쉽게 깨지고, 부서지고, 그리고 망가지는 소재의 선물이란 그런 것 아닌가?

 이세진은 투덜거릴지도 모르지만(아니, 모르지만이 아니라 투덜거릴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선물을 받는 입장에서 선택지란 없는 거니까.

 박문대는 그 모습을 상상이라도 한 듯 작게 웃더니 가죽으로 된 손목시계를 하나 사서, 자그마한 상자에 포장해달라고 했다. 작게 포장된 상자는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였다. 손목시계니만큼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주머니에 집어넣고서는, 8월 1일을 기다렸다. 느긋하게 말이다.

 7월 31일, 오후 11시 40분.

 박문대는 드물게 길드 건물에 있었다. 이런 시간에 길드 건물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이 보이자 사람들이 다들 힐긋, 힐긋 바라보면서 아는 척을 하곤 했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서 인사를 하면서 빠르게 건물 내부를 둘러보았다.

 건물 안 어딘가에는 이세진이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건물이 지나치게 넓은 것이 문제였다.

 8월 1일이 되기 전에는 이세진을 찾고 싶었다.

 그를 찾아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1층, 이세진은 없었다. 2층, 여전히 이세진은 보이지 않았다. 3층, 이세진은 보이지 않았다, 4층, 5층, 6층, 마찬가지였다.

 11시 55분, 슬슬 자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남은 곳은, 옥상뿐이었다. 박문대는 느긋하게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슬슬, 체력이 벅찬 듯, 숨이 조금 거칠어졌다. 평소보다 호흡이 길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하나, 둘, 그리고 마지막 남은 계단.

 벅찬 숨을 잠시 진정시키고, 손에 힘을 줘서 옥상 문을 열자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세진.”

 11시 59분.

 자정까지 1분 남은 그 순간,

 박문대는 이세진의 얼굴을 바라보고, 눈을 마주쳤다. 더운 여름날 밖에 있느라 이세진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이 보였다. 이세진은 평소에 길드 건물 내를 돌아다닐 때보다 가벼운 차림인데도 유달리 시선이 갔다. 무거울 리가 없는 선물이 유달리 무겁게 느껴졌다.

 12시.

 박문대는 성큼성큼, 이세진에게로 다가갔다. 여전한 얼굴로 이세진은 박문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자신을 찾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 박문대는 잠시 고민하듯 느릿하게 이세진을 바라보다가, 이내 주머니에서 포장된 선물 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이세진에게로 다가서서 다짜고짜 그의 손을 잡았다.

 이세진의 손은 단단하고, 알게 모르게 흉터가 많았다. 레이드의 최전방에서 몬스터와 싸우느라 생긴 흉터임이 틀림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박문대는 그것이 못내 서러워서 눈을 감았다 떴다.

 

 12시 1분.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박문대는 이세진의 손에, 그 단단하고 흉터가 많은, 누군가를 지킨 손 위에 선물 상자를 올려두었다. 선물 상자는 지나치게 작았다. 이세진이 손으로 움켜쥐면 바스러질 만큼.

그리고, 잡고 있던 이세진의 손을 놓은 채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생일 축하해, 세진아.”

 12시 2분,

 더운 여름의 바람이 훅-, 하고 불어와서 박문대와 이세진을 감쌌다.

 8월 1일, 이세진의 생일이었다.

Behind.

 

 이세진은 여전했다.

 제 몸을 험하게 다루는 것도, 그러다가 다쳐 오는 것도, 다 자신의 선택이어서 크게 후회하는 일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몸을 험하게 다룬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도면 정말, 무난하지 않던가? 물론 이세진이 유달리, 미련하게 군다는 말은 조금, 아주 조금… 공감했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좋아하는 이한테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라면 정말, 미련하게 구는 것이 틀림없어서. 때때로, 아니 가끔, 혹은 자주, 이세진은 후회하곤 했다. 조금 더 실리를 챙길 걸, 조금 더 이익을 챙길 걸, 조금 더 걱정 살 일을 덜 할걸.

 이세진의 등 뒤에 닿는 박문대의 손끝의 온도가 지나치게 따뜻했다.

 

 이 온도를 느끼기 위해서라면 조금, 자주 다쳐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정신 놓은 거 아니냐, 이세진? 제정신 차려.’ 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이세진의 손목에는 박문대가 생일 선물로 준 시계가 있었다.

 가죽 줄로 되어있고, 유리로 된 액정에, 그리고 몬스터의 공격으로 바로 바스러질 시계가. 박문대는 이 시계를 주면서 제가 다치질 않기를 기도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시계가 이다지도 약할 리가 없으니까.

 박문대는 이 시계에, 이세진이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한참을 고민하고…, 이내 구매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이세진은 못내, 가슴이 뛰어서 이건 꼭…,

 박문대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만 같았다. 이 생각이 이세진의 착각이어도 좋았다. 착각 속에 사는 사람도 나쁘지만은 않지 않은가?

 그리고, 우스운 소리지만….

 박문대가 이세진의 생각을 읽을 일은 죽어도 없을 테니까, 이런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분명.

 “아, 그렇지만 문대문대가….”

 이세진을 좋아했으면 좋겠어.

 제가 생각하고도 지나치게 불순한 생각이어서 이세진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세진은 차마 내뱉지 못한, 앞으로도 내뱉지 못할 말을 입 안으로 삼켰다.

 Playlist

 ​♥     눈기린  /  도리  /  마리
​ ♥     팽  /   bdb-

금사 @g01d_hunt3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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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합작은 ​비공식 2차 창작으로 원작과 관계가 없으며, 게재된 작품의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있습니다.

원작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_백덕수 / 주최, WIX 제작 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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