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공백 포함 11,413자

The origin of Love

​삐문@B16M00N

_august love

20xx년 겨울.

 

이세진은 유명한 편이었다. 박문대는 올해 여름에 전학 왔으니 반년, 정확히는 몇달 사이에 자신이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냐 싶겠지만. 그러니까, 정말로. 아이돌 준비 중이라면서 무슨 소속사에서 (어디인지까지는 관심이 없다.) 연습생 생활을 꽤 길게 하고 있다는 말이 과장을 조금 보태 열 걸음에 한 번씩 들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학교생활을 대충하는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들이며 동급생들 심지어는 선배나 후배까지 사이가 나쁜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인간관계마저도 좋아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딱히 이세진이 부럽지는 않았다. 아이돌이 되고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친해지면 주변이 시끄러워질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박문대는 이세진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특별히 더 의식하거나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렇게 쭉 신경을 끊었어야 했는데….

 

 

“이세진?”

 

“어...?”

 

 

담배 꽁초를 손에 쥐고 쭈그려 앉아있는 이세진이라니, 이 괴이한 조합에 발걸음이 절로 멈췄다. 수업이 끝난 학교 뒷길에서 마주한 이세진은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하긴, 박문대도 이 순간만큼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 지 고민이 될 정도였는데.

 

담배는 기호식품이긴 하지만, 미성년자가 흡연을 하는건 문제가 있지. 그것도 연예인 한다는 놈이.

 

 

"너 담배 피우냐."

 

기껏 생각하고 내뱉은 말에 조금 찔리는 부분이 있었는지 이세진은 황급히 손을 뒤로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 보기에도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아니, 이건…피우려고 했는데 안 했어. 진짜야.”

 

“… 그래?”

 

불을 붙이지 않은 걸로 봐서 -초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오늘은-미수라는 것 쯤은 알 수 있었고, 이세진이 박문대에게 나쁜 영향을 준 게 없는데 이 사실을 다른 누군가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진짜야, 오늘 처음 잡았는데... 오늘은 진짜 힘들어서.’ 앞에서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세진을 무시하고 주위를 살폈다. 자신 말고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음을 확인한 박문대는 이세진으로부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오늘 대처는 잘못된 것 같다.”

 

“그러게. 금방 후회했어.”

 

“알면 됐고. 일단 나 밖에 안 본 것 같으니까 다음에는 …”

 

 

이세진이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음에는 충동적으로 굴지 말라고 말해도 될지 잠시 고민했다.

 

 

“다음에는 충동적으로 행동하지마.”

 

박문대는 이세진의 대답을 듣는 것 대신 원래 이 자리에 자신이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것을 선택해 걸음을 옮겼다. 뒷길을 빠져나오면서도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냥 원래 하교하는 사람이었던 것 마냥 걸어가는 박문대의 뒷모습을 이세진은 한참 바라보며 서있었다.

-

 

 

 

박문대는 고개를 돌려 교실 맨 뒤 창가 자리에서 시끄럽게 이야기 하고 있는 무리를 바라봤다. 무리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이세진을 쳐다보고 있을 무렵, 시선을 눈치 챘는지 이세진이 박문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응? 나한테 할 말 있어?”

 

있겠냐. 박문대는 대답대신 앞을 바라봤다. 수업시간도 아니니까 떠들어도 상관없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금방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다음 수업의 교과서를 꺼냈다.

 

 

“다음 수업 준비를 벌써 하는 거야? 아직 쉬는 시간 5분이나 남았는데.”

 

 

잠시 비어있는 박문대의 앞자리 의자가 끌리는가 싶더니 이세진이 그 자리에 뒤돌아 앉았다. 언제부터 친했다고 이렇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거지. 맞은 편에 앉은 놈의 얼굴에는 어쩐지 긴장감이 서려있었다. 박문대는 그 긴장의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쫄았네.’

 

딱히 누구한테 말할 생각은 없는데. 나한테 득이 되는 것도 없고.

 

이렇게 불안해 할 거면서 이세진은 왜 거기서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이 될 거라고 그랬었나? 그러고 보니까 어디 데뷔조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았다.

 

이세진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쨌거나 박문대와 이세진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으니까. 잘 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낯선 인물이 자신의 -아이돌이 된 이후의- 미래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니. 그 생각 만으로도 이세진은 손바닥에 땀이 나는 것 같았다.

 

 

박문대는 안절부절 못하는 이세진의 손등을 뭉툭한 볼펜의 끝으로 꾹 눌렀다.

 

 

“뭘 걱정하는 건데.”

 

“…어?”

 

“네가 걱정할 일 같은 거 만들 생각 없어.”

 

 

뭐,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못 믿겠지만.

 

박문대는 이세진이 자신을 믿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세진은 아무 말 없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한참을 빤히 바라보더니 박문대 손에 있던 볼펜을 가져가 똑같이 박문대의 손등을 꾹 눌렀다.

 

얼마나 꾹 눌렀는지 손등에 동그란 자국이 남았다.

 

 

“…죽을래?”

 

 

볼펜 끝으로 힘 자랑하냐. 담배고 나발이고 이걸로 인성 공론화 하고 싶은데. 박문대는 뚱한 표정으로 이세진을 바라봤다. 언제 굳었던 표정을 하고 있었나 싶게 이세진은 웃고 있었다.

 

 

“문대 말은 믿을 수밖에 없네.”

 

“언제 봤다고.”

 

“그럼 나 문대 믿지마?”

 

“아니, 뭔…”

 

 

박문대는 뭔가 말을 이으려다 맥이 풀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대로 해라.”

 

 

이세진은 뭐가 좋은지 계속 웃었다. 묘하게 긴장됐던 분위기가 한결 풀렸다.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싶었지만 연습실에서 함께 연습하는 친구들보다 박문대가 더 믿음이 갔다. 이세진은 조용히 볼펜을 눌러 심이 나오게 하고 눈치를 살살 살피더니 박문대의 손을 가져가 허락도 없이 손등 위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이 자식이, 미쳤나.

 

나름대로 반항한다고 손을 빼면 힘은 또 얼마나 센지 아예 손등이 잡혔다. 이 이상 낙서 당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기에 박문대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너 연습한지 오래됐냐.”

 

 

박문대의 물음에 이세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오래됐지. 이세진과 박문대 사이를 감쌌던 편안한 공기가 묘하게 변했다. 이 말을 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솔직해지기로 했다.

 

 

“연습도 오래 했고, 데뷔 조에서 떨어지기도 많이 떨어졌지. 이번에는 진짜 데뷔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장님한테 연락 왔는데 난 이번에도 아니라고 하시더라.

 

생각보다 솔직하고 딥한 이세진의 말에 박문대는 행동을 멈췄다. 당황했는지 볼펜을 든 이세진으로부터 자신의 손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그라미 안에 작은 눈 두 개와 웃는 입을 그리는 이세진을 말릴 수 없었다.

 

 

“짠. 문대야, 웃으면 복이 온대.”

 

 

자신의 작품이 꽤 마음에 드는지 박문대의 손등을 요리조리 살펴보는 이세진을 조용히 바라봤다. 허락도 없이 낙서를 했으니 한대 쥐어박아야하는데 차마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난 우리 문대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웃는 걸 보는 게 하늘의 별따기 인 것 같아서 얘가 대신 웃어주는 거야. 행복의 스마일맨.”

 

“웃기시네. 니가 피카소도 아니고.”

 

 

볼펜을 빼앗아 자신과 똑같은 자리에 그림을 그려준 박문대는 이세진의 손에 웃는 표정을 그려 넣으며 목 아래까지 차올라 간지럽히는 말을 애써 눌렀다.

 

그래서 넌 행복하냐.

 

 

 

-

 

 

 

가끔은 상황이 의도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절대 친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세진과 박문대가 -이세진의 말로- 친구가 되었다는 게 그 중 하나였다.

 

시간이 지나 가까워진 이세진과 박문대를 알기라도 한건지 한 학년이 올라가서도 같은 반이 된 둘은 봄을 지나 여름에도 여전히 함께 다녔다.

 

 

“문대는 친구가 진짜 많은 것 같아.”

 

“또 뜬금없는 소리 한다.”

 

 

이 말을 이세진 네가 한다고? 매점에 가는 길에 마주친 동급생 친구와 가볍게 인사하고 지나갔더니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나 했더니. 박문대는 헛소리하는 이세진의 옆구리를 툭 쳤다.

 

 

“윽, 문대문대 손 무기인 거 알지?”

 

“모르는데.”

 

 

이세진은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먹을만한 것을 고르는 박문대를 재밌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박문대는 바나나 우유 하나를 챙기더니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놈을 마주 쳐다봤다.

 

“넌 안 고르냐?”

 

“헐, 문대문대가 나 사주는거야? 역시 우리 문대.”

 

“개소리엔 답 안한다.”

 

“답 했으니까 개소리는 아니네? 나도 문대랑 같은 걸로~”

 

“…”

 

 

박문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가감없이 내보이고 망설임 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타격도 없는지 실실 웃는 이세진에게 뭐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계산을 하러 가는 박문대를 따라갔다.

 

 

“문대는 바나나 우유 좋아해?”

 

“내가 대답해줘야 해?”

 

“이야, 야박하고 냉정해서 한 여름인데도 춥다 추워~”

 

 

나란히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푹 꽂아 교실로 향하는 동안에도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옆에서 종알거리는 이세진을 흘겨봤다. 정작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언제하면 좋을지 망설이던 이세진은 다가오는 친구에게 손 흔들어 인사하더니 별안간 박문대의 손을 잡고 멈춰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나 이번에 데뷔할 것 같아.”

 

 

우뚝, 로봇처럼 멈춘 박문대를 보고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웃던 이세진은 대뜸 손바닥을 내밀었다.

 

 

“축하 선물 줘.”

 

“맡겨뒀냐?”

 

 

이세진은 이런 박문대의 반응까지 예상했는지 삐졌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복도에서 그 큰 덩치로 발을 굴렀다.

 

“얼른~”

 

“너 데뷔하면 활동명 아치라고 해라. 양아치야.”

 

 

이런 박문대의 말에도 이세진은 기분 좋은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선물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함께 기뻐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알렸고 박문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축하가 이것이라는 것을 이세진은 알고 있었다.

 

 

“멤버들도 결정 됐는데 다들 너무 착하고 좋아. 벌써 기대된다. 다음 주부터 앨범 녹음 들어갈 것 같아.”

 

“학교는?”

 

“최대한 안 빠지는 쪽으로 하고 싶긴 한데 아마 자주 못 보지 않을까?”

 

“데뷔 날도 정해졌어?”

 

“어제 실장님한테 들었는데 10월 중순으로 잡고 계신대.”

 

“지금이 7월 중순이니까 거의 세달이네.”

 

“8월 1일에 멤버 공개 먼저 한다고 하시던데 그날이 내 생일이거든? 이사님이 선물 거하게 챙겨주시는 건가봐.”

 

 

어디가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을텐데 데뷔 멤버가 소속사를 통해 언론에 공개되는 순간 가족들과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거라고 말하며 교실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진심으로 신나 이야기하는 이세진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박문대에게만 몰래 말한 것이니 정말 노력할테니 지켜봐 달라고 말하고 자리로 가려는 놈을 잡아 손바닥 위에 매점에서 샀던 목캔디를 올려주었다.

 

 

“녹음 들어가면 목 많이 쓴다던데, 관리하라고.”

 

 

이제 선물 달라고 하지마라.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귀찮다는 듯이 말했지만 박문대 나름의 응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문대가 준 목캔디가 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만지작거렸다.

 

그날 이후로 정말 데뷔를 하게 되는 건지 학교에서 보는 이세진은 눈에 띄게 피곤해보였다. 출석 일수에 지장이 없게 관리한다고 한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이세진은 주간에는 학교, 하교 이후의 야간에는 연습실을 오갔다. 박문대는 그래도 피곤하다는 말 대신 행복하다는 말을 내뱉는 놈이 처음으로 조금 -아주 조금.- 멋지다고 생각했다.

 

[문대야 나 떨려… 1시간 뒤에 공개 되는 거 알지? 자지 말고 꼭 깨있어. ]

 

[나 이미 자려고 누웠는데. 넌 지금 어딘데?]

 

[뭐? 안돼. 일어나 문대문대.]

 

[난 연습실이지. 오늘은 다들 일찍 들어가고 나 혼자 연습실 지키는 중~]

 

[혼자? 겁도 없다.]

 

[ㅋㅋㅋ 문대 진짜 잘거야? ㅠㅠ]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박문대가 ’내일 학교 가야하니까.‘ 라고 답장을 보내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 집요한 곰돌이는 기어코 자신을 1시간 동안 재우지 않을 생각인가보다. 박문대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너 연습한다며.”

 

“아니, 너무 떨려서 집중할 수가 없단 말이야. 문대문대가 나랑 이야기 해줘.”

 

“집에서 가족들이랑 같이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냐?”

 

“우리 여사님한테는 이미 말씀드려뒀지. 자정에 휴대폰 확인하라고.”

 

 

떨린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지 말 끝이 작게 떨렸다. 박문대는 방 천장을 바라보다 문득 생긴 궁금증이 생겼다.

 

“넌 왜 아이돌이 되고 싶은데?”

 

“응? 갑자기?”

 

“그냥, 궁금해서.”

 

“음…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게 좋고 또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도 좋아서.”

 

“그게 끝?”

 

 

생각보다 심플한 답에 맥이 풀린 박문대의 목소리에 이세진이 웃으며 답했다.

 

“그치만 생각해봐, 문대야. 누군가에게 노래와 말로 힘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거 엄청 멋지고 대단한 거잖아.”

 

“조금 큰 꿈이긴 하지만 누군가가 정말 힘들고 슬프고 지칠 때 내 노래? 아니다, 우리 노래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가수가 되고 싶어.”

 

‘우리 팀 진짜 좋아서 아마 꼭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하나 더. 너 그때 담배는 뭐였냐?”

 

“아, 그건… 그때 신인 그룹 데뷔팀 짠다고 회사에 말이 돌았는데 확정 멤버 안에 내가 없더라고. 너무 힘들어서 나쁜 생각을 했었지. 문대가 발견해줘서 브레이크 밟은 거야.”

 

“나한테 잘 해야겠네.”

 

“문대한테 항상 잘 하고 있지 않아?”

 

조용한 밤에 전화를 통해 넘어오는 이세진은 어느 때보다 생기있고 즐거워보였다. 어떤 가수가 되고 싶은지 열심히 이야기 하는 이세진의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을 때 누군가 찾아온 듯 이세진의 말이 멈췄다.

 

 

“어? 실장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애들 다 갔는데.”

 

“이세진.”

 

“문대야, 미안.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박문대는 한순간에 이세진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눈치챘다. 알겠다는 대답을 하기도 전에 끊겨 어느새 배경화면을 띄고 있는 휴대폰을 보고 자정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박문대는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자정에 공개되면 이세진은 내일 학교에 오나? 안 그래도 생일이라 연락 많이 올 텐데, 학교가 시끌벅적 하겠네. 데뷔 축하 선물을 챙기는 게 좋을지, 생일 축하 선물을 챙기는 게 좋을지도 고민이 되네.

 

이세진이랑 붙어 다니니 별 생각을 다 한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박문대는 어느새 자정이 되어 8월 1일로 바뀐 날짜에 인터넷 플랫폼에 들어갔다. 이세진이 알려준 대로 소속사를 검색해 들어간 사이트에는 화려하게 데뷔하는 5인조 아이돌 그룹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세진의 이름을 찾으며 스크롤을 내렸지만 마지막까지 내렸음에도 박문대가 찾는 익숙한 이름은 볼 수 없었다.

 

일순간 온 몸을 감싸는 불길한 기분에 황급히 이세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던 놈은 통화음이 넘어갈 때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X발.”

데뷔 멤버 공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세진을 찾아온 소속사 관계자.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박문대는 자신의 집에서 이세진 소속사까지 걸리는 시간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10여분을 달려 도착한 이세진의 소속사로 당장이라도 쳐들어가 우중충하게 있을 놈을 꺼내오고 싶었지만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하는 씨큐리티에게 막혔다.

 

 

“친구만 불러서 데리고 나올게요. 여기 연습생이에요.”

 

“글쎄, 외부인은 출입을 못해요. 그렇게 말하고 들어가려고 수 쓰는 사람들 많습니다.”

 

짜증나지만 부정할 수 없었기에 애꿎은 번호를 꾹꾹 눌러 다시 이세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좀 받아라, 이세진.”

 

“혹시 학생이 찾는 친구가 세진이?”

 

이세진의 이름을 들은 씨큐리티는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박문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이미 20분 전에 이미 건물을 나섰다는 말이 돌아왔다. 감사인사를 하고 자리를 벗어난 박문대는 이세진이 갈 법한 장소를 생각했다.

그 놈 성격에 분명히 가족들에게 내색하지 않기 위해 혼자 감정을 정리하고 들어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하아, 어디 있는 거야. 도대체.”

소속사에서 이세진의 집에 가는 길에 있는 공원 두 군데를 살펴보고 마지막 공원에 들어갈 때까지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여기에도 없다면 이젠 어디서 찾는게 좋을지, 머리로는 다음 계획을 세우며 주변을 둘러보던 박문대가 걸음을 멈췄다.

“…”

공원 안쪽,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된 작은 놀이터에 있는 그네에 맞지 않은 큰 덩치의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연락을 씹은 놈의 뒷통수를 때려주고 싶었지만 불빛이 반짝거리는 휴대폰을 꼭 쥐고 조용히 고개만 숙이고 있는 이세진에게 쉽게 다갈 수 없었다.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박문대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공원을 나섰다.

 

 

‘세진아, 미안하다. 내가 이사님께 정말 열심히 이야기 해봤거든? 근데 네 포지션이…’

 

 

괜찮다고 말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아니 괜찮을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인 줄 알았는데. 하나 둘 잡혀가는 일정을 볼 때마다 꿈이 한발자국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았는데... 주위가 희망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사라지고 다시 혼자가 된 기분. 꿈처럼 되풀이되는 희망고문에 이세진은 점점 곪아갔다. 하필 오늘이네. 생일을 축하한다며 연락이 오는 탓에 자꾸만 반짝이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도 외로운 기분은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얼른 들어가야 하는데... 자신이 태어난 날 데뷔 탈락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 순간.

 

 

“이세진.”

 

 

가족 다음으로 만나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머리 위에 들렸다. 굳이 얼굴을 들지 않아도 누가 서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는데… 몇 번이고 온 전화를 받지 않아서 찾아온 걸까. 왜 전화를 받지 않았던 건지,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을 눈치빠른 박문대가 모를리 없었다.

 

 

“문대야, 나 지금 너무 쪽팔려서 그런데 못 본 척 하고 그냥 가주라.”

 

“뭔 소리야. 내가 오늘 너 찾으려고 돌아다닌 게 얼만데.”

 

 

좋은 말로 할 때 고개 들어라.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박문대의 단호한 말에 이세진은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이세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초코과자를 탑처럼 쌓아 그 위에 길게 하나 꽂힌 초. 불을 찾지 못한 건지 불꽃이 없는 깨끗한 초 끝에도 마치 제 눈에는 초에 불이 붙어있는 것처럼 집중한 표정의 박문대. 이세진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이마에 땀이 송글 맺혀있었다.

 

 

“케이크를 사고 싶었는데, 근처에 문 연 곳이 없더라고.”

 

“아쉬운 대로 이걸로 해봤다. 내년에는 제일 먼저 축하해줄게.”

 

“생일 축하한다.”

 

 

말을 하고서도 뭘 기다리는지 내려놓지 않는 박문대가 이상한지 대신 들어주려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을 피하며 이세진에게 무슨 짓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소원 안비냐? 소원 빌고 초 불어서 불 꺼야지.”

 

“불도 없으면서.”

 

“생일에도 맞고 싶은가보지.”

 

 

이세진은 발끈한 박문대의 말에 조용히 미소 지으며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당장 떠오르는 생각들은 많았지만 그중에서 정말 바라는 한 가지. 간절함을 담아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읊조린 이세진은 눈을 떠 빈 초 끝을 불었다.

 

 

“야, 이거 과자 봉지 다 버렸으니까 너 이거 지금 다 먹어라.”

 

“지금? 이거 다 먹으면 살찌는 거 아냐? 문대도 먹어.”

 

“난 양치하고 나와서 별로. 니 생일 선물인데.”

 

“또 이렇게 선물을 퉁 친다고?”

 

 

퉁 쳐야지. 그제서야 이세진의 손에 과자 케이크를 넘겨준 박문대는 옆의 빈 그네에 앉았다. 기분이 뭐 같을 때는 단거 먹으면 좀 괜찮더라. 발로 바닥을 밀어 말없이 그네를 타며 초코파이를 입에 문 이세진을 바라봤다. 말을 해야 되냐, 말아야 되냐. 어쩌면 자신이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박문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야.”

 

“응?”

 

“난 니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뜬금없는 박문대의 말에 가득 쌓여있는 초코과자를 먹던 이세진이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건지 바로 마주치는 시선에 의미를 알아차렸다. 앞뒤로 움직이던 그네가 멈추고 적막이 흘렀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상황이 이어졌고, 그 적막을 먼저 깬 사람은 박문대였다.

 

 

“아까 니가 말했던 누군가가 정말 힘들고 슬프고 지칠 때 위로가 되고 힘을 주는 사람. 너 그런 가수 될 수 있을거라고.”

 

“아.”

 

역시 눈치 채고 왔네... 박문대의 말에도 이세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실장님이 오셔서 그러시더라. 이사님께서 내 포지션이 애매하다고 말씀하셨대. 나는 올라운더라는게 좋은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어느 쪽도 안 된다는 거라는 걸 이제서야 깨달은 거야.”

 

“…”

 

“어쩌면 난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던 걸지도 몰라. 그걸 미련하게 지금까지 붙잡고 있었던 거지.”

 

 

어쩌면 헛된 꿈에 사로잡혀 지금까지 시간을 버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혼자 마음속으로 삼키던 말을 직접 입 밖으로 내뱉으니 정말로 그게 사실인 것 같았다.

 

 

“글쎄. 여기서 포기하면 진짜 그런 사람이 되는 거겠지. 니가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더 없어질 테니까. 근데 계속하면? 계속 하기만 하면 앞으로 데뷔의 기회가 몇 번이나 더 있을지 모르는데 여기서 포기할래?”

 

 

어서 말해보라는 박문대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눈 앞에서 데뷔를 놓치면서도 소원으로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 정도로 간절한 꿈이었다. 이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이세진은 대답 대신 박문대를 바라봤다.

 

 

“나 할 수 있을까?”

 

“뭔 소리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넌 해.”

 

확신에 찬 박문대의 모습에 거짓말처럼 이세진을 감쌌던 우울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문대야, 한번만 안아도 돼?”

 

“오글거리게 뭔 소리야.”

 

“나 힘나게 한번만 안아주라.”

 

 

박문대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특유의 티벳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 이세진을 끌어안았다. 가만히 안고 있으니 일정하게 등을 토닥이는 손이 느껴졌다. 부드러운 토닥임을 받으며 한참 끌어안고 있을 무렵 늦어지는 귀가를 걱정한 부모님의 전화에 함께 공원을 빠져나왔다.

 

 

“문대야, 너도 아이돌 준비할 생각없어?”

 

“슬슬 개소리 시작하네.”

 

“아니 진짜로. 너 노래도 잘 부르잖아. 조금만 하면 가능할걸?”

 

“너는 뭐 하고.”

 

“음~ 문대는 메인 보컬 하고 나는 메인 댄서 할게.”

 

 

2인조냐? 둘이서 무슨 아이돌이야. 말도 안된다고 대답하며 앞서 걸어 나가는 박문대를 바라보다 말 없이 손을 뻗어 손을 잡았다. 갑작스러워 당황한 표정을 짓던 박문대는 깍지 껴 잡는 이세진을 잠시 흘기고는 모르는 척 길을 따라 걸어갔다.

 

 

“두 명은 아무래도 좀 힘들겠지? 그럼 여덟명 어때?”

 

“그렇게 많으면 파트 분량 적어지잖아. 일곱 정도로 해.”

 

“와~ 문대문대 아이돌 안 한다더니 자기 파트 분량 걱정된다고 지금 한명 퇴출시킨 거야?”

 

“뭐라는 거야. 너를 살린 거지. 홀수면 안무 짤 때 센터 기준으로 중심 잡기 좋잖아.“

 

“우리 문대 이제 보니까 아이돌에 진심이네. 지금도 안 늦었어.”

 

 

함께 걸어가며 마주 잡은 손이 간질거렸지만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이야기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밀린 생일 축하 연락에 답을 하는 순간에도 오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이세진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

 

초코과자 케이크 축하로도 부족했는지 문자까지 남긴 박문대의 이름을 한참 바라보다 참지 못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불과 몇시간 전에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했음에도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여보세요.”

 

“문대야, 나 잠이 안 와.”

 

 

한숨을 쉬면서도 먼저 전화를 끊지 않는 상대와 다시 시작하는 별 시덥지않은 대화. 학교에 가면 최악의 생일이 될 뻔 했던 오늘을 바꿔준 박문대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너를 알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The origin of Love (august love) END

 Playlist

 ​♥     눈기린  /  도리  /  마리
​ ♥     팽  /   bdb-

본 합작은 ​비공식 2차 창작으로 원작과 관계가 없으며, 게재된 작품의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있습니다.

원작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_백덕수 / 주최, WIX 제작 수은

bottom of page